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-남송 전쟁 (문단 편집) == 제2전간기(1260~1266) == 이런 상황에서 [[전쟁 영웅]]이 되었던 '''[[가사도]]'''[* 말이 전쟁 영웅이지 실제로는 짜고친 고스톱이었는데, 자세한 건 [[가사도]] 항목을 참고하시면 된다.]가 1260년 이후 덜컥 재상이 된다. [[도량형]], 통화개혁, [[부정부패]] 엄단, 긴축 재정 정책 등 평시 수상으로는 나쁜 인물은 아니었지만 군벌들을 중앙에서 밀어내어 군사력을 악화시켰고, 특히 송나라의 마지막 재상이 된 충신 [[문천상]]을 박해한 것 때문에 더욱 욕먹었다. 또한 남송의 또 다른 명장인 [[유정(원나라)|유정]]은 [[여문덕]][* 남송의 명장 중 하나이나, 가사도에게 결탁했다.]에게 무시당하였다.[* 유정은 여문덕에게 계책을 올려도 무시당하고, 공을 세워도 여문덕이 이를 가로챈다.] 여문덕이 유정과 사이가 좋지 않은 유흥을 사천제치사에 임명하였고, 그렇잖아도 상사벽과 조세웅[* 악주 전투에서 활약한 무장들]이 죽자 불안해하던 유정은 그가 지키던 노주를 몽골에 바친다.[* 나중에 노주는 여문덕에 의해 수복되지만, 유정이 원에 투항함으로써 몽골군은 수군을 육성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남송 정권에 큰 손실을 주게 되었다.] 1260년 [[쿠빌라이 칸]]이 올랐지만 친동생인 [[아리크부카]]와의 쟁탈전으로 4년 동안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다.[* 1261년 배후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[[학경]]을 사신으로 보내나, 학경은 진주에서 억류당했다.] 게다가 1262년 이단 등 한족 관리들이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이들이 남송과 같이 동맹을 맺어서 배신할 것을 우려했고, 이는 남송을 토벌하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. 그리고 1264년 [[쿠빌라이 칸]]이 마침내 [[아리크부카]]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후환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